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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에서의 1991년(The war in Dubrovnik 1991)

구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전쟁이 발발했다. 1990년대에 시작하여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야 종결이 된 이 전쟁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많은 동부 유럽의 공산체제가 민주화를 외치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구 유고슬라비아 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 1989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속한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후 유고슬라비아 붕괴 과정에서 일어난 내전에서 대 세르비아주의를 주창하며 타민족 학살을 주도하여 국제사회의 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밀로셰비치는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 계 군 수장들을 모은 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대상으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의 계획은 가능한한 많은 영토를 확보하여 대 세르비아주의 국가를 만들고자 하였고 이외에도 밀로 주카노비치(전 몬테네그로 총리)와 모미르 불라토비치(몬테네그로 초대 대통령)가 이를 동조하고 있었다.

 

구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도 두브로브니트는 관광 사업으로 조직된 군대가 없었으며 전쟁이 발발하는 초기에도 별다른 전투가 없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 측에서 여론을 통해 크로아티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에서 사람들을 무장시켜 군대를 결성하였고 곧 몬테네그로를 공격 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를 알리기 시작했다. 헤르체고비나 동부 지역에 주둔하던 세르비아 군대와 몬테네그로는 두브로브니크와 그 주변 지역에 대한 공격 준비를 완료하였다.

 

두브로브니크 지역으로의 공격은 10월 1일 처음으로 공중에서 폭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유고슬라비아 전투기는 가장 먼저 수도 공급, 전기 에너지 공급 라인과 방송.통신 기지국을 차례로 폭파 시키면서 도시 기능을 마비시켰다. 두브로브니크 도시 전체는 물과 전기 공급이 끊어진 채로 몇 달을 버터야만 했다.

 

당시 두브로브니크에 결성된 크로아티아 군대는 사실상 아무런 계획도 전력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군대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공격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내 곧 두브로브니크 전체를 둘러싸고 압박을 가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전쟁 기념관이 있는)스르지 언덕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당시 만들어졌던 요새만이 저항할 수 있었던 장소였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군대는 심지어 유네스코로 지정 보호 받고 있던 오노프리오 분수, 스폰자 궁전, 도시 종탑, 프란시스코 수도원,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 등이 피해를 입었다.– 차라리 피해를 입지 않은 문화 유산을 말하는 것이 더 쉬울 만큼 공격을 퍼부었다.

 

결정적인 피해를 입게된 1991년 12월 6일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도시를 점령하는 순간으로 이미 도시 곳곳은 포탄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황폐화되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문화 유산이 부서지고 마을은 불바다가 되었다. 도시 항구나 호텔 시설은 물론 궁전, 교회 또한 불에 타기 시작했다. 리베르타스 호텔에서 화재를 진압하려던 세 명의 소방관들이 적들이 던진 수류탄에 목숨을 잃었으며, 필레 성문에 위치한 임페리얼 호텔 또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날만 2,000 개 이상의 수류탄이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 떨어졌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역사적 산물 1/3 정도가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트르스테노 식물원은 완전히 불에 타버렸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공격을 당한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티토의 저항군 당시에도 이러한 피해는 없었다.

 

스르지 산 마저 점령하려 군인들이 올라가 각개 전투를 벌였으나 크로아티아 군대는 이들을 저지하였다.

 

1992년 초,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군대가 다시 도시를 휘젓고자 진격을 시도하였으나 상황은 이전과 달랐다. 크로아티아 군대는 강했고 그들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그 해 여름과 가을은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에도 힘을 내기 시작하였고 두브로브니크를 포함한 주변 지역들을 탈환하기 시작했다. 점차 주민들은 숨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후에도 산발적인 공격을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1995년 한 여름, 세르비아 군이 자톤(Zaton) 해변을 공격하였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3명이 죽고 많은 인원들이 부상을 당하였다.

 

전쟁의 피해는 가혹하였다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군은 도시 전체를 약탈하였는데- 도시의 모든 호텔, 공항, 성채, 선박을 강탈하였고 배를 이용해 주변 섬까지 침투해 고가의 예술 작품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약 15억 유로(한화: 1조9,230억) 상당의 금전적 피해까지 입었다.

 

400명 이상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 중 92명이 두브로브니크 민간 지원군이었다. 2127채 가구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77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집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군은 모리느에(Morinje) 지역에 군 캠프를 만들어 그곳에서 붙잡힌 크로아티아 인들을 학대하기도 하였다.

 

두브로브니크를 파멸하고자 하였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군 장성들은 헤이그 국제재판소에서 5년에서 7년 수감 형을 받았으나 대부분 2-3년 뒤에 조기 석방되었다.

 

물론 두브로브니크 침공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몬테네그로 내에서 수 많이 있었고 그들은 두 개의 큰 전쟁 반대를 표명하는 저항 단체를 결성하였고 당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용서해주세요, 두브로브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