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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룸(Lok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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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룸은 두브로브니크 바로 가까이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숲이 울창한 섬으로 수 세기 동안 베네딕트 수도회에서 관리하에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재정난을 맞았던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은 1789년 섬의 매각을 결정하였다.

 

같은해, 전설적인 로크룸 저주가 시작이 되었다. 오늘날 회자되는 역사적인 사실은 당시 섬에 대한 매각 결정에 대해 분노를 하던 수도사들은 검은 후드를 걸치고 촛불을 자신의 손에 거꾸로 들고 섬을 도는 행렬을 가지면 무서운 주문을 말하였다고 한다. : “이후에 로크룸 섬을 소유하는 모든 자들에게 죽음이나 불운이 임할지어다”

 

처음 섬을 매각한 주인은 두브로브니크의 부유한 사람들의 조합으로 섬을 사들였으나 곧 이어 그들의 재산 대부분을 잃게 되는 불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에 마르코 모차세비치(Marko Tomasevic) 손으로 넘어갔으나 그는 미스터리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폴레옹이 공화국을 접수하던 시기에도 로크룸을 일시적으로 소유하였던 나폴레옹 마저 이후에 엘바(Elba)라는 지중해 섬으로 유배를 떠났던 점을 고려하면 로크룸 섬의 저주가 실질적으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폴레옹 이후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가 이 고요한 섬의 주인이 되었고 이 섬에 항구를 설치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였으나 잠들었던 저주가 다시 일어났다. 로크룸으로 들어오기로 하였던 오스트리아 배, 트리톤(Triton)호가 섬 근처에서 폭발하면서 선원 85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생이었던 막시밀리아노 1세(Archduke Maximilian- 오스트리아의 대공이자 멕시코 제국의 황제이다.)는  오스트리아 해군 소장을 복무하여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총독으로 있었는데 당시 선원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두브로브니크를 찾았는데 로크룸 섬에 매료되어 이후 세계 지도자들을 영접하는 장소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희귀한 식물 종을 가져와 심거나 공작새, 앵무새, 카나리아 등의 조류를 데려왔다. 베네딕토 수도원 건물을 자신의 여름 별장으로 개조하였으며 자신의 아내(벨기에 국왕 레오폴 1세의 딸 샤를로트)와 함께 로크룸에서 평안하고 고요한 시간들을 보내곤 하였다.

 

하지만 그의 아내 샤를로트는 야심적이었다. 그녀의 남편을 설득해 멕시코 제국의 황제가 되기를 바라였고 고심 끝에 막시밀리아노는 멕시코로 건너가게 된다. 19세기 멕시코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정치적 대립이 끊이질 않았는데 결국 그는 케레타로 교외의 한 언덕에서 총살당하는 마지막을 맞이하였다.

 

이후 로크룸은 그의 조카이자 프란즈 요세프의 아들이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Rudolf)에게 위임이 되었다. 그는 벨기에의 공주 스테파니와 결혼하였으나 이는 벨기에와 오스트리아 간의 정치적인 협정을 위한 결혼이었다. 정치적인 노선이 다른 아버지와 늘 대립했으며, 모후는 그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않게 되어 정신병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마리 폰 베세라(Baroness Mary Vetsera)라는 애인이 따로 있었는데 그 사실이 발각이 되자 그녀를 죽이고 자신도 사냥총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를 다른  영화, 비우(1968 - 오마 샤리프 주연)가 있다. 극중에서나 책에서는 로크룸 저주가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으나 로크룸의 저주를 알고 있던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그 저주가 황태자 루돌프에게도 임했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후이며 유럽 왕실 중에 허리가 가장 가늘어 당시 뛰어난 미인으로도 유명했던 엘리자베트, 시씨(SiSsi)라는 애칭을 가졌던 그녀는 아들 루돌프 황태자를 데리고 처음 로크룸을 찾았다. 그녀 역시 이후에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Luigi Luccheini)에 의해 암살 당하였다.

 

로크룸 섬은 또 다른 왕권의 후계자 프란츠 퍼디난드 (Franz Ferdinand) 와 무서운 인연이 있는데 그 또한 사라예보에서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 당하였으며 이는 세계 1차 대전의 시작이 발발하였던 중요한 사건이다.

 

로크룸 섬을 소유했던 이들 모두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그저 전설에 불과했던 저주는 마침 불에 기름을 붓는 듯 두브로브니크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로크룸 섬은 국가 소유로 반환되었고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다.

 

위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아름다운 로크룸 보다는 저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오스트리아 제국 인물들의 비극은 있었지만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에서만 맴돌던 구전 동화 같은 일 뿐이며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 섬은 그 어떤 전쟁에서도 피해를 입은 적이 없으며 화재 사고 또한 단 한번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로크룸은 신비로운 동화 속 장소와 같은 곳이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막시밀라노의 정원을 볼 수 있으며 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작새에게 모이를 주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고요하고 평온한 곳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바다에서 헤엄을 즐길 수 있는 여러 해변이 있다. 여러분에게 맞는 해변을 이곳에서 찾으세요(클릭). (누드 비치 또한 존재하고 있으니)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항구에서 로크룸으로 운행 중인 선박은 매 시간 30분마다 정기적으로 낮 시간부터 밤까지 운행하고 있다. (편집자: 또 다른 „저주“는 섬을 소유하는 자가 아닌 섬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자들에게 저주가 임한다고 해 숙박 시설이 없다. 밤에는 불 빛 하나가 없는 섬이니 해가 지면 꼭 집으로 돌아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