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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터 궁전 (Rector's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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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터 궁전은 이전 렉터(지도자, 관리, 영주 개념)가 상주하는 장소로 사실상 매달 선출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권력의 달콤함을 느낄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렉터 임기 기간 동안에, 렉터는 특별한 지시나 요구가 없이는 궁전을 떠나지 않으며 직무를 담당하였다. 당시 필레 성문과 플로체 성문은 어두운 밤이면 항상 잠그도록 법이 제정되어 있어서 성문 관리인이 성문을 닫고 열쇠로 잠그고 나면 렉터에게 열쇠를 반납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렉터는 그 열쇠를 돌려주어 문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규율이 정해져 있었다. 크네제브 드보르(Knezev Dvor)라고 불리는 회관이 있는데 감옥, 법원, 화약고 등의 세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기 전까지 두 차례의 폭발 사건과 궁전이 훼손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렉터 궁전의 입구에 적힌 문구를 보면: Obliti privatorum publica curate (개인은 잊고 공공을 위해 고민하라), 이는 이전 두브로브니크 전체 구성원 모두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된다.

 

수 많은 조각 예술가, 귀족들이 예술 활동을 위한 장소로도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페타르 마르티노브(Petar Martinov)가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의약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묘사한 작품이 대표적이다.

 

화려할 것만 같은 궁전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있다. 당시 범죄자들은 혹독한 감옥 속에 억류하는데 그곳은 습하며 매우 좁고, 어둡고 더럽기까지 했으며 매우 번잡한 구조였다.

 

기록 문서에 이르면 수 많은 수감자들이 25년 이상을 감옥에서 단 하루 조차 햇빛을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반정부 주동 세력이나 적대적인 사람들이 주로 투옥 생활을 하였으며 습하고 좁은 감옥 환경뿐만 아니라 체인으로 묶여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감옥을 '바다 감옥'이라고 부르며 거센 파도가 들이닥치면 그 자리에서 수장을 당할 수도 있는 끔찍한 감옥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화약고 폭파 사건과 대지진으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 '바다 감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흥미롭거나 소름돋을 수 있는 이야기를 얘기하다면 매일 아침마다 렉터 궁전에서 업무를 보는 고위급 인사들도 매일 아침 궁전으로 오는데 그때 마다 죄수들이 소리를 질르고 하였지만 그 어떤 비명 소리에도 흔들리는 렉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렉터 궁전 아트리엄(주로 궁전 안뜰 중앙 작은 방을 말함)은 음향 설계가 잘 된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 가수들을 불러와 각 종 콘서트를 주최하기도 하였다. 렉터 궁전 내부에서 소리를 내면 얼마나 그 당시 죄수들의 고함이나 비명이 선명하게 들렸을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철저한 감옥처럼 묘사되었으나 사실은 도망자들이 속출했던 기록 또한 남아있다. 

 

일리야 다디치(Ilija Dadić)라는 인물은 무려 다섯번의 탈옥을 강행했던 인물로 두브로브니크-판 몽테 크리스토(Monte Christo) 이다.

  

오늘날의 렉터 궁전은 더 이상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관광객과 학생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남아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공화국 시절의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물론 렉터 궁전을 가면 악명 높은 감옥 또한 찾아가 볼 수가 있다. 그 당시에 쓰여진 골동품이나 가구 등을 볼 수 있으며 귀족과 해외 여러 작가들이 남겨놓은 예술 작품 컬렉션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위 층으로 올라가면 당시 렉터의 개인 침실과 집무하던 방 또한 볼 수가 있게 되어있다.

 

렉터 궁전 박물관 방문 입장 관련 세부 정보는 이곳을 클릭하여 찾아볼 수 있다.